물꼬기왕자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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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첫사랑> _ 3화

#이한

3화. 조금씩, 너에게 비가 그치고 며칠이 지난 뒤, 교실은 다시 평소처럼 시끌벅적했다. 6월의 햇살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고, 아이들의 교복 소매는 하나둘씩 접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날, 담임 선생님은 깜짝 공지를 전했다. “다음 주에 반 대항 미술대회가 있어. 참가할 사람?”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한은 관심 없는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고, 하나는 책상 위에 펜을 돌리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나야. 너 그림 잘 그리지 않니?” “아… 그냥, 좋아하는 정도예요.” “이한이도 같이 나가면 좋겠네. 너 지난번에 하나 그려준 거 꽤 괜찮았어.” “선생님, 그건 장난이었는데요…” “장난도 실력 있어야 해. 두 명 조로 나가. 어때?” 둘은 어색하게 마주봤다. 이한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하나도 조용히 말했다. “저도, 괜찮아요.”

그날 방과 후, 미술실. 햇살이 기울 무렵, 텅 빈 미술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하나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이한은 색연필을 정리하며 뭔가 불편한 듯 자꾸 눈치를 봤다. “…너 나랑 있으면 불편해?” 하나의 질문에 이한은 놀라듯 고개를 들었다. “아니, 전혀. 그냥…” “그냥?” “너랑 있으면… 좀 긴장돼.” 그 말에 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한은 멋쩍게 웃었다. 그 웃음엔 진심이 섞여 있었다. “나 원래 아무 말이나 막 하거든. 근데 너 앞에선 이상하게 말 조심하게 돼.” “왜?” “네가, 생각보다 조용해서.” 그 말은 어쩌면 ‘조용해서 신경 쓰여’라는 뜻이었다. 하나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사실 나, 예전엔 안 그랬어.” “응?” “중학교 때까진 되게 활발했어. 친구도 많았고. 근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 중에 가장 친한 친구한테, 그림을 훔쳤단 오해를 받았어.” 이한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결국 내가 아니란 거 밝혀졌지만, 그 친구는 끝까지 사과 안 했어. 다른 애들은 그냥 모른 척했고. 그래서… 웃는 것도, 말 거는 것도 다 겁났어.” 하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조용히 펜을 돌리며,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조용해진 거야. 나.”

이한은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으로 다가와, 색연필 하나를 그녀 쪽으로 밀어줬다. 그녀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을 때, 이한은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잘해줄게. 오해 같은 거 없게.” “…” “그리고, 너 웃는 거… 꽤 예쁘더라.” 그 말에 하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잠시 후,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은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한은 그 웃음이 더 자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며칠 후, 대회 당일. 두 사람은 반을 대표해 커다란 캔버스를 마주했다. 주제는 ‘우리 반의 여름’. 하나는 푸른 하늘과 물감을, 이한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함께 웃는 아이들, 서로 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친구들,

그리고— 조용히 나란히 앉은 두 사람. 그림 속, 하나와 이한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감탄했다. “이거, 너희 감정이 다 담긴 그림 같아.” 이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조금씩, 서로에게 가고 있는 중이라서요.” ⸻ 그날,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노을이 붉게 번지는 골목, 두 사람은 말없이 걷고 있었다. 하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이한아.” “응?” “앞으로도… 나랑 같이 그림 그려줄래?”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도, 우산도, 뭐든. 네가 필요하면, 항상.” 그날의 저녁, 붉은 노을 아래. 서로의 그림 안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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