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찌_

조회수 17824.07.22

remind (소설)

#단편소설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지나가던시준희입니다만'쌤이 추천해주신 소재입니다.

:이미 꽤 진행되고 있던 것으로 보여요. -그럼 이게..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병입니다. 알츠하이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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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의사에게 묻는 민형이었다. 의사는 꽤나 담담해보이는 민형에, 흘끗 보고 대답했다. :알츠하이머는 다른 병보다 악화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긴 하나, 서서히 기억력이 흐려지고, 언어기능이나 판단력에도 문제가 생기는 등 인지기능 이상이 동반될 겁니다. -그 후엔요? :그 후엔, 사람에 따라 불안, 우울, 망상과 같은 정신 행동 이상을 보이거나 심한 경우 경직, 보행 이상 등의 신경학적 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나요? 마주친 의사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최근 알츠하이머로 사망하는 환자들의 비율이 차차 증가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그 순간에도 민형은, 읽을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사가 그런 민형에게 희망적인 말을 건넸다.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주로 발병되는 집단인 7-80대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냈을테니까요. 거기다 민형씨는 훨씬 젊으시고.. 요즘 계속해서 알츠하이머나 치매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치료법도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까, -근데요. 전 왜 걸렸을까요. 하지만 민형은 그저, 원인이 궁금할 뿐이였다. 왜 하필 저인지. :...치매와 비슷한 신경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사실상 원인이 명확히 없습니다. 사람의 뇌는 살아있는 채로 열어볼수도, 분석할수도 없어서요. -그렇군요. :이십대에게서 보기 아주 드문 병이기도 하고요. -제가 운이 안 좋았던 거네요 그럼. :..글쎄요. -답이 됐어요. :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질문 하셔도 됩니다. -기억하지 못하게 될거라 하셨잖아요. 절대 잊고 싶지 않을만큼 소중했던 모든 것까지도, 다 그렇게 될까요? 영원히? 다시 한번 의사의 눈을 쳐다보는 민형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민형에게 선의의 거짓말 따위 해줄 수 없었다. :아마... 그럴겁니다. 그건 환자분 머릿속에서 가장 늦게 지워지는 기억이 되지 않을까요?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민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받아들일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오늘은 이만 가봐도 될까요? :네. 그럼 일주일 내에 병원 한번 더 방문해주세요. 그땐 치료법이나 약물, 검사 등에 대한 상담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듣자마자 가방을 챙겨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민형이었다. '잔인하다 참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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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아!' 다급히 달려와 안기는 이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형이었다. -왜 이렇게 뛰어와, 넘어지겠다. '너, 어딜 갔다 온거야.. 하...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아, 초밥 사러. 너 저번달부터 초밥, 초밥 노래를 불렀잖아. 먹고 싶을 것 같아서 내가, '뭐..? 초밥...?' -응. 니가 좋아하는 연어 많이 사왔어. 배고프지? 해맑게 웃으며 초밥이 담긴 봉지를 보여주는 민형을 보고, 이정의 표정이 싹 굳었다. '...야.' -어? '너 진짜...' -왜 그래, 초밥 싫어? 다른 거 사올까? 울지 말고.. 다시 사올게. 응? 울먹이는 이정에 당황한 민형이 달래주던 찰나, '우리 초밥 이틀 전에 먹었어.' 민형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랬구나. '그렇게 남 일 얘기하듯 반응하지 말라고 했지.' -....토스트 사올까? '넌 지금 그게 중요해?' -너 배고프면 안되니까. 민형의 말을 들은 이정이 헛웃음 지었다.

'내가 배고픈 게 뭐?' 이정은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울분을 토했다. '너는? 니 상태는? 넌 네 걱정도 안돼? 이렇게 계속 나빠지고만 있는데 너는.. 왜 항상 그런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는건데 왜...' -나 괜찮아. '너 안 괜찮아.' -...... 이정의 마지막 말에 민형의 마음 속은 복잡해졌다. '넌 늘 이렇지.. 넌 나한테 기대기 싫어하잖아. 너 나한테 한번이라도 힘들다, 싫다 내색한 적 있어? 내 앞에서 무너진 모습 보이고 눈물 보인 적 있냐고.' -...이정아.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한테 힘든 거 티 내는 거 쉬운 거 아니지. 아닌 거 아는데, 널 사랑하기에 알고 싶다 나는. 니 진심을.' -.... '나 갈게.' 그리고 그렇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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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경찰서 책상에 태평하게 엎드려 자고 있는 민형을 한번 쳐다보곤, 거듭 사과하는 이정이였다. :아 괜찮습니다. 편의점 앞에 취해서 누워있다고 신고 받아서 데리고 온 것 뿐인걸요. '아, 얘가 평소에 진짜 안 이러는데, 오늘 뭔 일이 있었나봐요 하...' 경찰은 무언가 떠오른 듯 이정에게 물었다.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혹시 이 학생, 어디 아픈..거예요? '네?' :아까 잠깐 깨웠을 때, 어찌나 펑펑 울던지.. 기억이 하나도 안난다면서 아주 오열을 하더라고요. '...울었다고요..?' :네. 집주소를 물어도 자꾸 기억이 안나요 하면서 울길래 경찰서로 데려온거거든요, 방법이 없어서. 보고 있는 내가 더 짠하던데. 어디 아픈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이정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경찰서에서 나와, 민형을 부축하려는 이정이 말했다. '야. 걸어.' -.... '이민형. 좀 걸어보라고, 집에 안 갈거야?' -...여기가 내 집인데.. '여기 니네 집 아니라 경찰서 앞이라고. 빨리 가자고..!' -안 갈래.. '왜 안 가. 여기서 살거야?' -....무서워. 민형의 말에 이정이 고개를 돌려 민형을 쳐다봤다. -이정아 나 사실, 무서워. 어제 약은 먹었는지, 같이 맞춘 목걸이는 언제 어디서 샀던건지, 너랑 만난 지 얼마나 됐는지 하나 둘씩 기억이 안 나서. 자신과의 추억이 기억이 안 난다는 말에 이경이 되물었다. '다...기억 안 나..?' -하나도 모르겠어.. '...하..' 착잡한 이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지는 민형의 진심에 이정의 가슴은 타들어가는 듯 했다. -이정아. 나는, 다 괜찮아. 저녁을 두번 차려먹어도, 설거지 한번 더 해도. 밸브 잠궜는지 확인하러 다시 들어갈 때도.. 다 괜찮아. '뭐가...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거야 그게.' -내가 정말 무서운 건 너를 잊어가는거야. 니가 생각이 안 나는 순간이 언젠가 올 것 같아서. 그 순간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끔찍하게 두려워. -남아있는 순간들이 아깝고, 짧고, 금방 지나가버려서 점점 붙잡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또 다 놓아버리면 편해질까 싶, '야 이민형.' 그리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쏟아내던 말을 멈춘 민형이었다. 이정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야, 너 어제 약 먹었어. 이 목걸이 우리 1학년 때 동대문 가서 맞춘거고, 한달 전에 5주년 파티 했고.' '기억 못 하면, 기억이 안 나면 그냥 이렇게 물어보면 되잖아. 내가 이렇게 대답해주면 되잖아.'

-하지만.. '놓긴 뭘 놔. 너 나 버리고 다 놔버릴 수 있어? 그럴 수 있으면 어디 그래봐.' -...내가 미안해. '니가 날 기억 못 해도, 그래서 상처받고 매일 울어도 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기억을 잃어도 넌 이민형일 거잖아..' 그 말이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민형이었다. '내가 기억할거야. 니가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갈 때마다,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도 니가 나한테 어떤 사람이였는지 내가 다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이정아. '그러니까 제발.... 제발 그런 생각하지 마. 내 앞에선 울지도 않고 다 참으면서 혼자서 그런 생각하고 있지 말라고..' 민형이 들썩이는 이정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응. 그럴게, 이제. '난, 니가 날 기억 못 하는 것보다 이게 더 무서워... 말 안하고 혼자 울다가 오늘 같은 날에 어디서 확 죽어버릴까봐..'

-미안해. 너 무섭고 슬프게 해서. 마음 아프게 해서,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민형의 소중한 기억을 위해 이정은 일기를 권유했다. 뭘 써야할지 잘 모르겠다던 민형은 정말 세세한 것까지 일기에 전부 적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것들을 읽으며 이정에게 질문했다. -있잖아, 나 일기 읽다가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뭔데?' -우리 18살에, 어떻게 만나게 된거야? '...어떻게 만나긴. 기억 안 나? 학교에서 니가 나 일방적으로 엄청 쫓아다녔지 뭐..' -내가? 그랬어? '그래. 내가 받아줄 때까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그랬다, 왜.' -하긴. 내가 먼저 좋아했을 것 같긴 했어. -음... 근데.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면서 고백했어? 민형의 질문에 바삐 타자 치던 이정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대답했다. '...내가 첫사랑이라고.. 막 그랬어.' -역시.. 그것도 그럴 줄 알았어. 그 말에 이정이 피식 웃었다. -왜 웃어? '너 진짜 하나도 기억 못 하는구나..' -뭘? '아니야. 오늘 거 다 썼어?' -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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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놀이터에 있는 민형을 발견하고, 이정이 안도의 숨을 한번 들이켠 뒤 민형에게로 향했다. '너 왜 또 이러고 있는데.' -...왜 왔어.. '너 데리러. 감기 걸리고 싶어? 외투라도 챙겨 입고 나오지 진짜..' -.... '왜. 이번엔 뭐가 또 기억이 안 나길래 이래. 생일?' -...... 민형이 이럴 때마다 그저 속상한 이정이였다.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말을 좀 해보라고. 말 안 할거야 나랑? 그 말에, 땅바닥만 보던 민형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이름. '뭐?' -니 이름이, 생각 안 나. 지하 저 끝까지 뚝 떨어지는 기분에, 이정이 되물었다. '내 이름을...모르겠다고..?' -네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인 건 알겠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 -미안해. 기억 못 해서.

'방금... 뭐라고 했어?'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는 민형이 낯선 이정이였다. -난 이젠 정말 끝인 것 같아. 우린 여기까지야.. 빨간 눈가에 눈물이 고인 민형이 포기한 듯 말했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더는 희망이 안 보여. 그토록 두려워했던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해주듯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너를 부르려는데, 니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순간에... 내가 무너져버렸어. 이정이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부정했다. '아니야. 아니야 민형아, 방법이 있을거야. 제발 여기서 무너지지마.' -헤어지자. 우리. 그럼에도 이미 마음을 굳힌 민형이었다. '...그럼 넌. 넌 어쩌려고 이래.' -병원에 입원하려고. 전에 의사가 말했던 그런 증상들이 점점 하나 둘씩 나타나잖아. 나랑 더 있어봤자, 너만 힘들어 분명. 넌 나 책임 못 져. 단호한 민형에게 이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날 다 잊을거야..?

-...머지않아 그렇게 되겠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민형이 모질게 이정을 떼어냈다. 그리고 몇날 며칠, 자기 전 고민했었던 마지막 인사의 말들을 이정에게 한마디, 한마디 전했다. -비록 이제는 기억이 사라져 어렴풋 감정만 남았지만, 예전의 나는 널 아마 많이 좋아했을거야. '...그만. 제발 그만해..' 괴로워하는 이정이였다. -너도 나처럼 전부 잊고 행복했음 해. '난 그럴 수가 없잖아..' -할 수 있어. 이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민형 또한 그러고 싶었지만, 또 참고 말았다. 자신까지 울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름은 계속 모를게. 알려줬는데 또 까먹게 되면 더 슬플 것 같아서. 그리고, 혹시나 나 어디 있는지 알게 되더라도 찾아오지 말아주라. 너한테 끝까지 안 좋은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너 안아도 될까. 이정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민형은 기다렸다는 듯 이정을 꼭 끌어안았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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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이정은, 몰려있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웅성대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엿들었다. :그래서요? -소문으론 쓰러져서 다시 실려갔다고 하던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진 이정이 슬쩍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학생. 학생도 어젯밤에 그거 들었어? '어젯밤이요? 밤에 뭔 일 있었대요?' -거 좋은 것도 아닌데 말하지 말지 참.. :아니 글쎄. 새벽에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 학생 또래 남자애가 쓰러져서 실려갔대. '빈혈이래요?' -빈혈이 아니고, 병원에서 탈출한 치매 환자였다고 그러드라고. '...치매요..?' 순간, 민형이 생각난 이정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 정신도 온전치 않은 사람이 그 새벽에 여기까지 논스톱으로 왔으면.. 안 쓰러지는 게 더 이상하겠다. 안 그래요? -글제. 거기다 서신병원이면 차 타고 거진 한 시간 걸릴텐디. -에휴 젊은 학생이 어쩌다가.. 괜히 또 마음이 그러네... :아깝죠.. 들어보니까 치매 말기라던데.

:아니. 근데 치매 환자라더니 용케 본인 집은 기억하고 찾아온 게.. 참 신기하네. {이정아. 그거 알아? 의사가.. 절대 잊고 싶지 않을만큼 소중한 게, 내 머릿속에서 가장 늦게 지워지는 기억이 될거래. 신기하지.} '...본인 집으로 가기 위해 나간 게 아닐수도 있죠.' :응? 그럼? 이정이 눈물 방울을 매달고 웃었다. '무의식적으로 보고 싶은 것을 마음 한 켠에 그리고 그리다가 뛰쳐나간 걸지도 모르죠.' '제 정신이 아닐지언정,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것이.. 하나쯤은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건 아마... 본인이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자,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자, 가장 미안했던 사람이었겠죠.' 그렇게 말하며, 이정은 찰나에 민형과의 마지막 날을 떠올렸다. {아마 내가 널 많이 좋아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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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민형아. 내가, 너.. 오래 전부터 많이 좋아했어...' -응. 알아. '어?' -어떻게 모르겠어. 그렇게 티 나게 쫓아다니고 집 앞에서 매번 기다리는데. '아... 미안해.. 나 많이 부담스러웠지..?' -너는 내가 그렇게 좋아? '...응. 니가 내 첫사랑이거든.'

눈 부셨던 나의 첫사랑.

그래서 이뤄지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이렇게 아팠나보다. 첫사랑이라.

늘 슬픈 눈을 감추기 바빴던 민형아. 네 세상에서는 정말, 울고 웃어도 괜찮아. 맘 편히. 더 밝게.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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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개의 댓글

  • 썬디_ 24.07.22

    글 너무 잘 쓰시네요…미쳤어요..💚

  • 도옹ღ 24.07.23

    너무 슬푸어요..😭😭

  • 잼즈 24.07.23

    울어서 개가되

  • 마크야당장나라세우자 24.07.27

    와 미친 지금 저 우는거 맞죠..?🥹 햄찌쌤 이제 작가 하는걸로~!😻💗

  • NCTzen🐟 24.07.31

    미쳣다 눈물 날거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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