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찌_

조회수 29024.06.18

수암고 나재민 (소설)

※단편입니다 (다음화 없음)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2018년 4월, 어느 늦봄 {...기요? 저기요!} -네? 저요? {곧 마감이라고요. 영업 종료 시간 다 됐어요.} -헐 벌써요? 아직 다 못 끝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나와 알바생 둘만 남아 고요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업무창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나갈게요.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정리하는데,

'...뭐야. 쟤는 아직도 저러고 있네.' 3시간 전, 주문을 마치고 짐을 풀고 있을 때 건너편 아파트 정자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이였다. '저기서 잠들었다가 방금 일어났나' 홀린 듯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내게 알바생이 재촉했다. {저기요! 이제 진짜 테이블 닦아야 하거든요?} -아, 네네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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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하... 하여튼 이놈의 오지랖 진짜.'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 판매점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는 오늘도 딱 400원만 투자해보자는 심리로 아이스크림 바를 하나 집어 계산했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저러고 있겠지.'

'와. 이자식이?' 어두워서 전혀 안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바닥에 흰 색 무더기가 사방에 깔려있었다. '꽁초가 무슨. 쟤 미쳤네.' -야!! 고개를 돌린 남학생이 나를 삐딱하게 쳐다봤다. 마주 보니 꽤나 날티나게 생긴 얼굴이였다. "야?"

-그래 야. 어디서 이 어린 놈의 시키가 혼자 담배 한 무데기를... "뭐? 아니 뭔 소리야 이거," -뭔 소리야? 이게 어디서 존댓말이ㅇ '아 미친. 잘못 말했다.' 너는 얄밉게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치. 존댓말을 할 순 없으니까 반말 해야지." -와 나... 이런 싹수 노란 놈을 봤나. "좀 알고 떠들지?" -뭐? "진작에 금연했는데, 이런 오해나 받고."

갸웃거리는 내 표정을 보고 네가 말을 덧붙였다. "내꺼 아니라고요." -그럼 뭔데. "여기 원래 흡연 핫플구역. 몰랐어? 다 여기서 피던데." -뭐래.. 여기 놀이터거든? "나도 알거든? 다들 그렇든 말든 신경 안 쓰는거지 뭐." -와~ 너무들 하네 진짜. 애들 노는 데인데. 너는 한번 피식 웃고 말했다. "어른들은 늘 그렇지." 그런 너를 잠시 살펴보다가 문득 떠오른 까만 비닐봉지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먹어.

"뭐야, 갑자기. 수상하게." -남의 호의를 왜 이따구로다가 받아들이지? "그니까. 나한테 호의를 왜 베풀지?" -그..냥? "그냥? 세상에 그냥이 어디 있어." -야. 내가 설마 너한테 400원어치 대가 받으려고 사줬겠냐? 걍 좀 먹으라고. 나는 걔 손에 차차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까서 쥐여줬다. "살다보면 400원만큼 잘해주고 400만원 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이고? 세상 다 사셨네. "이정도면 꽤 오래 살았지." -그래~ 아주 대단히 오래 사셨다. 너 솔직히 말해봐. 사회반항아, 비행청소년 뭐 그런거지? 막 살고 그런.

"뭐?" 네가 어이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막 살다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네네. 어련히 그러시겠죠 네. "이봐. 내가 아니라 해도 믿지도 않으면서 다들." 너는 고개를 두어번 젓고 손에 쥔 아이스크림을 바라봤다. "근데. 하필 사줘도 딱 딸기맛이네. 나 엿 맥이는 것도 아니고." -왜. 딸기 싫어? "엉." -잘 됐네. 이참에 좋아해봐. "어이없어. 나 이거, 배고프니까 그냥 먹는거야."

크게 한입씩 베어무는 남학생을 쳐다봤다. '오? 수암고 교복이다. 명찰에 뭐라고 적힌거야, 나..재민?' "뭘 봐 자꾸. 먹고 있는데." -너 수암고 다녀? "....어." -내 후배네. 몇살인데? "열아홉." -와 고삼.. 스물 곧이네, 응? "그냥 빨리 성인이나 됐으면." -뭐? 야 성인 되면 뭐, 좋을 줄 아냐? 니 인생 니 책임 되는 그거 얼마나 부담스러운데. "그니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 돈 좀 맘편히 벌게." -돈? 웬 돈..

'뭔가 사연이 있는건가.' 나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물었다. -그... 보려고 본 건 아니고 저쪽 카페에서 보여서 본건데. 여기서 뭐했어, 몇시간동안? 심심하게. "게임." -거짓말. 폰도 안 보던데? "이야. 나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봐?"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 -..생각? "어. 그냥 앉아서 계속 생각했어." -세네시간을..? "뭐. 어쩌다보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나 오래. "그러게~" 더 말하고 싶지 않은지 아까보다 크게 한입을 베어물었다.

나도 화제를 돌렸다. -...싫어한다더니, 잘만 먹네. 맛있지? "그닥. 배고프댔잖아." -저녁 안 먹었어? 너는 거의 다 먹어가는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거. 내 첫끼." -뭐? 그게? 지금 11시 다 되어가는데? "그럼 첫끼이자 막끼." -왜 안 먹었는데. "먹는데 귀찮게 말 거는 게 특기인가봐." -쬐깐한 게 진짜? 버릇이 너무 없네.. "아~ 그래요? 그러는 누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얄미워 미치겠네. 죽빵 마렵다.' -22살이다. 어쩔래.

"뭐야. 고작 세살 가지고 꼰대놀이 한거야?" -뭐? 고작 세살? 넌 너보다 세살 어리면 중3이거든? 세살 차이가 얼마나 큰데.. "그런가." -그럼! "22살이면.. 대학교 3학년?" -그래. 16학번. "...좋겠네." -뭐가? 늙은 게?! 니가 웃었다. "그것도 있고." -시끄러워. 다 먹었으면 얼른 들어나 가. 부모님 걱정하신다.

"집에 없는데." -그럼 부모님 없을 때 고삐 풀린거구만? "따로 산다고요." -엥. 자취해? 혼자? "응. 나 되게 대단하지?" 솔직히, 그랬다. '아니 열아홉이 무슨 자취래, 돈은 어디서 나서. 나도 지금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인데.' -그러네. 네가 씩 웃었다.

-근데, 너 외동이야? 형제자매 없어? "동생. 연년생 남동생" -동생이 형한테 참 좋은 거 보고 배웠겠다, 응? "죽었는데, 재작년에." -....어? "죽었다고. 교통사고로." -아... "됐어. 그런 반응 치워."

오늘따라 어째 말실수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았다. -야. 미안. "됐다고. 괜찮다고." -동생이랑. 많이 친했어? "왜. 별로 안 슬퍼보여서?"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365일 걔 얘기만 나오면 우울해하고 질질 짜고. 그래야 슬픈거냐?" -...

"안 슬퍼보이는거지, 그냥. 무뎌지고 단단해져서."

그때 너를 바라본 찰나의 순간. 고작 열아홉살인 너의 얼굴에서 뭐랄까. 꼭 실패와 좌절을 아주 많이 겪은 30대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그저 한번 생각해볼 뿐이였다. 어쩌면, 저 장난기 서린 가벼운 모습으로 어깨 위 무거운 짐들을 숨기고 사는걸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거니.'

-야. "왜." -너 생각보다 되게... "생각보다 뭐. 불쌍해?" -깊다. "...뭐?" -속이. 속이 깊다고, 너. "갑자기 뭔.." -니가 싸가지만 좀 없지, 나름 성숙하네. "아니거든. 나 철 없거든." -지금도 봐. 툴툴거리지만서도 내가 귀찮게 질문할 때 다 받아주잖아. 밀어내지도 못하고.

"못 밀어내는 거 아니고 안 밀어낸거라고." 네 귀가 조금 붉어졌다. "그리고, 지금 가려고 했거든? 아이스크림 다 먹었으니까 갈거야." 막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홱 던지는 너였다. '괜히 틱틱대기는. 칭찬에 약한 건 저 나이대 남자애들 종특인가.' -칭찬을 해줘도 진짜.. 그래라 그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보네. "..." -왜. 또 막상 철수 당하니까 기분 별로야? "좋진 않아서." -으휴.. 가. 가버려 얼른. "그래." 네가 뒤돌아 가방을 맸다. 오늘 쓴 400원이 아깝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나도 비닐봉지를 버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잘 먹었어." 조용했던 등 뒤에서 갑자기 네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저 아이스크림은 이제 먹을 수 있을 것 같네." -어...? "그니까, 대충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야. 쌩초면인 사람한테 양아치로 오해 받았어도, 수상한 딸기 아이스크림을 건네 받았을 때도. 그 오지랖이랑 시덥잖은 얘기들까지도." -...오지랖 아니고 조언..이지. 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거."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셔. 그쪽도. 처음엔 또 못돼먹은 어른이 접근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 다음은 취객 상또라이인 줄 알고 대충 대꾸했는데." -어쭈? "처음 본 사이에 어디까지 알 수 있나 싶지만, 적어도 오늘 본 모습들에서는 내가 봐온 어른들 중 가장 나쁘지 않은 사람이였어." 네가 만나온 어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였을까. '또 아까 그 눈빛." -...야. 어른이라고 거창한 거 있을 줄 아냐. 나도 막 안 믿기고 그래. 아직도 십대 같고. "다들 그렇지." -근데. 십대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간이 훅훅 간다. 대학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눈 한번 깜빡하면 금세 서른 되어있을 것 같고. "최악인데. 평생 젊고 싶은데." -그니까. 지금 더 열~심히 살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서 공부도 후회 안 할 만큼 해봐. 네게 꼭 해주고 싶은 진심 어린 말들이였다. "...." -어어? 이것이 왜 대답을 안해? 어? "...그래. 그래볼게 한번."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너 이 아파트 살아? "내가 돈이 어디서 나서 여기 혼자 살아. 나 돈 없어서 40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모르는 사람한테 얻어먹는 처지인데." -참나. 그럼 어디 사는데? "비밀." -뭐야. 왜. "나 찾아올까봐 그런다." -뭐?? 아니, "아~ 배고프다. 역시 아이스크림으로 한 끼 때우기는 좀 너무했네. 그치?" -허.. "그니까, 나중에 언젠가 만나면. 나 또 밥 못 먹었겠지 생각하고 더 맛있는 거 사. 아이스크림 말고." -싫어, 내가 니 밥을 왜! "누님. 열두신데 조용히 입 다무시고 살펴가십쇼. 부디 잘 지내시고요." -너..! '마지막만 존대면 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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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수암고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그 혹시.. 3학년 나재민 학생 좀 바꿔주실 수 있나요? {몇반인지 아세요?} -아뇨.. 잘... {가족이세요?} -아니요. 지인이에요, 아는 누나. {네 잠시만요,}

{확인해봤는데, 나재민 학생 자퇴 처리됐는데요.} -....네? 아니 그게 무슨, {자퇴 처분됐네요 4월에. 아르바이트랑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3분의 1 넘게 무단결석으로 빠졌대요. 자퇴 사유에 적혀있,} -잠깐만요. 4월이요? {네. 4월 16일 자퇴 처리됐어요.}

4월 16일. ('...뭐야. 쟤는 아직도 저러고 있네.') ("생각.") (-..생각?) ("어. 그냥 앉아서 계속 생각했어.")

-하... 너 뭐하는 놈이냐 대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걸 네가 떠안고 있었던걸까. 너는 정말 혼자 어떤 짐을 짊어지고 있었길래. 어딘가 텅 빈 네 표정과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날의 뒷모습만이 오버랩 되었다.

총 3개의 댓글

  • 도옹ღ 24.06.18

    ㅁㅊ 개쩐다 (아직안봄) 자기전에 보고 잘끄에요!!

  • 백이진 24.06.18

    아미친...광광울고가게되.

  • 엥시리- 24.06.21

    하 샘 진짜 미쳤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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