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똥이

조회수 11924.09.19

[장편] 그냥 그런

[*생각보다 많이 긺 주의*] “야 말 다했냐?” “다 했으면 어쩔건데 니가.”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꺼져 그냥” 빠앙- 그때 우리, 싸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우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놈을 처음 만난 날은, 뜨거운 여름이었다. “아 뜨거워..” 나는 따가운 햇빛을 피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야!“ ”..괜찮으세요?“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본 순간, 무언갈 직감했다. ”아, 네 괜찮아요. 그쪽은요?“ ”저도 뭐..“ ”전 이민호에요.“ 넌 내 이름을 궁금해 하는 듯 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양정인이요“ ”반가워요, 정인씨“ ”네“ ”앞으로 친하게 지낼까요?“ ”나쁘지 않네요.“ ”몇 살이세요?“ ”01년생이에요.“ ”동생이네~ 저 98이에요“ ”말 놓으세요 그럼“ ”그래 정인아, 너도 말 놓아라“ ”응“ ”너 학교 다니겠네 그럼?“ ”어. 저기 저 고등학교.“ ”헐? 나 저기 교사야“ ”뭐? 그게 가능해?“ ”가능하던데?“ ”하긴.. 내가 고3이니까“ “잘 부탁한다 생기부 잘써줄게”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말도 안돼는 인연을 맺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이민호가 쌤이라고..? 난 처음 봤는데..’ 공부를 하려 해도 오늘 만난 인연인지 왠수인지 그 사람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안됐다. 나는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바빠?‘ ’어 왜?‘ ’쌤 됀지 얼마나 됐음?‘

’한 일주일?‘ ’뭐야 신입이네?‘ ’지랄..’ ‘담임임?’ ‘ㅇㅇ‘ ’몇 반’ ’3학년 1반‘ ’아씨 우리반인데‘ ’재수도 좋다 하필 너냐?‘ ’나도 싫거든’ ‘내일 개학인데 어쩔건데-.-’ ‘그건 내가 할 말이고‘ ‘아 몰라몰라 준비할거 개많으니까 내일보자’ ‘ㅇㅇ 잘자라’ 그렇게 개학 날이 되었다. “또 개학..” 나는 교복을 단정히 입고 메신저백을 메고 학교에 갔다.

”오늘 선도부 나와있으려나? 아 몰라 될대로 되겠지“ 나는 학교 교문 앞에 도착했다. “아 젠장..” 이민호였다. 우리학교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 새로 들어오신 선생님들은 일주일동안 선도를 서며 학교 규칙을 익혀갔다. 설마했는데 이민호도 선도를 서있었다. 나는 눈을 피하며 거의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덥석. 이민호가 내 손목을 잡았다. “안녕 정인아?” “아 왜 잡아” “선생님한테 반말이야?^^” “하..”

안그래도 수능때문에 예민해 죽겠는데, 이민호까지 날 괴롭히다니. 이보다 더 한 악몽은 없을 것 같다. “선생님? 좀 놔주실래요?” 나는 재빨리 교실로 들어가 앉았다. 종이 치고, 조례시간이 되었다. “얘들아 안녕!!!!” ‘아 시끄러..‘ 이민호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난 이민호!! 니네 담임!! 난 수학담당!! 그럼 열공!!“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네. 나는 신경쓰지 않고 마저 공부하려 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리고 이민호가 다시 들어왔다. “아 맞다 정인이는 쌤 좀 볼까?” 공부하려니까 계속 방해하네. 빨리 끝내잔 생각으로 빨리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야야 정인아 나 잘했냐?” “잘했겠냐” “아 왜..” “쌤이 왜이리 시끄러워, 애들 다 수능땜에 예민하다고” “아 그런거야?” “좀 닥쳐 제발.” “알겟어.. 들어가서 공부해..“ ”아, 왜 또 풀이 죽었어. 1교시 수학이니까 좀 있다보자 선생님“ 풀이 죽어있는 이민호를 보자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렇게 1교시가 시작되고, 민호가 아침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들어왔다. 어딘가 힘 없는 목소리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왜인지 내 탓같았다. 나는 수업을 듣다 말고 종이를 꺼내 글자 몇 자를 쓰기 시작했다.

‘야 이민호 목소리가 왜이리 힘이 없어. 나 때문이야? 수학 하나는 기가 막히네. 모르는거 있을 때 찾아갈게. 그래도 돼지? 하필 내가 반장이라 우리 자주 만나겠다. 비록 아직 학생이지만 힘든 거 있을 때 나한테 물어봐. 나름 선생님노릇도 해봤으니까. 힘들 땐 기대도 돼. 오해는 하지말고, 힘내라.’ 쓰고 나니 수업이 다 끝나있었다. “수업은 여기서 마칠게요.” 라고 말하는 이민호에게 뭔지모를 감정이 들었다. ‘아,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정신차려 양정인‘ 그렇게 민호를 의식하며 학교일과가 끝났다. 나는 남아서 교실을 치우고 있었다. 드르륵- “야 양정인 내 책상에 편지..”

“아 봤어?” “뭐냐 너?” “뭐가” “네가 뭔데 날 챙겨” “너니까 챙기지” “사람 오해하게 만들지 마” “뭐래,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근데 너 왜 혼자 교실을 청소해?” “원래 그랬어.” “왜?” “아무도 안하잖아. 다들 공부한다고 바빠. 반장인 내가 해야지 뭐” “넌 공부 안해?” “나도 하지” “안힘들어?” “니가 말시키는게 더 힘드니까 좀 가줄래?” “나 퇴근하는데, 같이 가자” “좀 기다려 그럼“

민호는 맨 뒷자리에 앉아 날 기다렸다. ”근데 양정인, 얘는 어떤 애야?“ ”아 걔? 왠만하면 건들지 마. 성격이 보통성격이 아니야.“ ”그래..?“ ”꼭 필요한 얘기 아니면 하지 마. 그래야 너가 안힘들어“ ”ㅇㅋ..“ ”다했다, 가자“ ”차타고 갈래?“ ”좋지“ “수능 공부는 어떻게 되가?” “그냥 그래..” “최저는?” “3합 4. 망했지 뭐“ ”쉽지는 않네, 근데 너 성적표 보니까 가능하겠던데?“ ”그래..?“ ”엉, 재수 좋은줄 알아라“ ”아 몰라ㅠㅜ 수능 한 달도 안남았는데..“ ”너무 떨지 마, 나도 수능 칠 때 그랬는데, 오히려 독이더라“ ”그치.. 민호 형, 나 수능칠 때 마중올거지?“ ”ㅋㅋㅋ당연하지 임마“ ”담임인데 와야지 그럼“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고. 이제 애들 학교 슬슬 안나올 때니까 너도 공부 열심히 해” “고마워. 나 여기서 내릴게“ ”어 그래, 잘가라!!“ 나는 그렇게 공부에만 열중했다.

시간이 지나 수능 당일. 간단히 아침을 먹고 평소와 다름없이 나갔다. “양정이인~!!!” “어, 형 아니. 선생님” “수능잘쳐라ㅏㅏ!!” “왜이리 신났어ㅋㅋㅋ” “너 수능 다 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오, 진짜? 알겠어 고마워 형” 그렇게 나는 수능장으로 가고, 시간이 지나 학교를 나왔다. ‘하..쉽지 않네..’ “정인아!” “이미노!” “시험은? 어땠어?” “쉽진 않았는데, 그래도 할 만한거 같은데?” “카페가서 채점해 볼래?” “오..그래 뭐..“

솔직히 마냥 좋지는 않았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선생님을 사적으로 꾸준히 만난다는게 주변 시선이 어떨지 알기에. 그리고 너무 부담스러웠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나만 잘해주고 그냥 탐탁치 않았다. 게다가 날 좋아하는 거 같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난 어쩔 수 없이 민호의 권유로 카페에 가서 수학을 매겨봤다. 결과는, 97점.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며 이야기를 했다. “와 미친 양정인 개쩐다..” “별거 아냐ㅋ” ”ㅋㅋㅋ 3합 4 되겠다 너“ “그니까.. 나도 어안이 벙벙해” “축하해~” “이제 학교 안와야지” “우씨..나랑 놀아야지..” “아 뭐래는거야, 너 나 좋아하냐?” 참다참다 결국 터져버렸다. “뭐?” “나 좋아하냐고, 왜자꾸 지랄이야” “야 말 다했냐?”

“다 했으면 어쩔건데 니가.”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꺼져 그냥” 빠앙- 그냥, 이민호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보다. 이제 수능 다 쳤는데 교통사고라니. “..양정인? 양정인!! 정신차려봐!!“ “하아..” “미안해..잘못했어..제발 정인아…” 민호는 나를 껴안고 울었다. 민호의 울음소리는 세상을 잃은 듯 비통하게 들렸다.

그렇게 우린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민호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이민호는 선생이니까.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연락이 왔다. [2월 1일] ‘정인아 몸은 좀 어때? 연락 할 수 있을 때 연락 줘. 걱정된다.‘ [2월 2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2월 3일] ‘정인아 문자 읽고 있어? 나 너무 걱정돼.. 제발..’ [2월 4일] ‘양정인 나쁜놈..‘ [2월 5일] ‘아직도 연락 못하나.. 좀 괜찮아진거 맞아?‘ [2월 6일] ’네 생일 얼마 안남았네.. 그 전까진 괜찮아져야 할 텐데..’ [2월 7일] ‘내일 나 출장가야 해서 연락 못해. 미리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리고 수능 끝났던 날..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내가 너무 염치가 없었어. 좀 건강해졌길 바라면서, 답장 기다릴게.’ 답장하기 싫었다. 읽고싶지도 않았다.

니가 뭔데? 날 이딴식으로 만들어 놓고 저런 말이 나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수능도 끝났겠다, 이제 이민호랑 말도 안할거다. 이민호를 몰랐던 그 시간으로 돌릴거다. [‘이민호’ 님의 전화번호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삭제했다. 이제 이민호와 나는 진짜 모르는 사람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퇴원을 하고, 학교를 가야했다. 나는 교복을 입고 갔다. “…양정인” 뒤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이민호다. “하…” “양정인.. 너 양정인 맞지..?” “맞으면 뭐, 어쩔건데요.” “미안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울었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그냥 내가 다 잘못했어..” “일어나라고.” ”…“ ”아는 체도 하지마 이제.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는 이민호에게서 등을 돌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양정인.” 아까와는 다른 말투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 이민호를 쳐다봤다. “갈거면 내 이야기는 다 듣고 가.” “뭔데요” “내가 뭘 잘못했어?” 예상치 못한 말에 아무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너 다치게 한거? 뭔데. 말을 해.” “그쪽은 선생이고 저는 학생이에요.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설마, 너 그거 때문에 그러는거였어?“

”뿐만이 아니죠. 그쪽이 너무 부담스럽게 하시잖아요. 아무리 세 살차이라 해도 저는 미성년자고 그쪽은 성인이시잖아요“ “그래서 내가 싫다, 이거야?” “예.” “알겠어 그럼.” 이민호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는 마주칠 수 없었고, 볼 생각도 없다. 그냥 그런은 무슨, 애초에 말대꾸하는게 아니었다.

총 13개의 댓글

  • 햄똥이 24.09.19

    🔥가관즈 갤러리였다가 스테이분의 요청으로 아리랑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심심해서 재미로 적은거니까 가볍게 봐주세요~

  • 용복아밥더먹어 24.09.19

    이런 긴 글.. 진짜 너무 좋앟욯 진짷 ㅠ 스토리가 탄탄해..멋져..재믺얶!!

  • 리노♡° 24.09.19

    이 글 너무 맘에 들어요..

  • 주황빛양정인 24.09.19

    꺄 이 조합 찬성입니다🙆🏻‍♀️ 많은분들이 가관즈를 외칠 때 전 보따람지를 외치는데 아리랑도 좋네유❤️

  • 초딩스테이 24.09.21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햄똥이쌤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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