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찌_

조회수 35724.02.24

Vampire (소설)

※다 제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입니다 (삼풍백화점 사건 제외)

[2075.6.29.]

"그래. 오늘 내 350번째 생일이다. 나이 많아서 부럽냐?"

-형아, 진짜 뱀파이어에요??(의심) "엉" -피 먹어요? "그렇다고" -그럼 나 물어봐요 "왜" -물리면 뱀파이어 될 수 있잖아요! 나두 뱀파이어 돼서 형처럼 영원히 살래요

"...."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의 말은, 과거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뱀파이어 하면 안돼요?]

.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1995년 6월 29일. 시작은 내 270번째 생일이였다. '생일이 뭐라고. 어차피 인간도 아니면서..'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어도 매년 착실히 챙겼다. 그저, 시간의 흐름과 나이의 개념이 사라진 나의 지루해빠진 세상에서 무료한 생일까지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매년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내 나이를 어느순간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이유로 혼자 백화점에 가서 깔짝대고 있던 중이였다. 추잡스럽게 한 손엔 생크림 케이크나 들고 말이다. 그날. 1995년, 백화점. 아직까지 인간들 입에 이따금씩 오르내리는 백화점 붕괴 사건. 안타깝게도 바로 그곳이였다, 그날 내가 있던 곳이. 아마 내가 인간이였다면 생일날 초상을 치렀겠지. 붕괴가 시작됐고 순식간에 백화점 내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인간들은 겁에 질려 우르르 도망치기 바빴고, 건물은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내렸다.

애진작 뭉개진 케이크를 버리고 나가기 위해 앞길을 가로막는 건물 벽과 천장을 치우고 있던 중, 두 눈을 꼭 감고 울고 있는 여자애를 발견했다. -엄마, 오빠 미안해....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 '야야 너 머리 위에,' 인간 생과 사에 별 감흥 없던 나였지만, 어쩌다 보니 기둥을 지탱하고 있었다. -어,어떻게...그걸.. '야이씨..쫌....무거우니까 빨리 비켜!' 그 아이가 황급히 옆으로 비키자마자, 힘이 빠진 내가 기둥을 놓쳐 깔렸다. 쿵-! 둔탁하고도 큰 소리와 함께 기둥이 쓰러졌고, 천장도 잇따라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많이 놀랐는지 시끄러운 비명을 지르길래 깔린 상태로 일단은 힘겨운 척 말했다. '야. 괜찮으니까 더 무너지기 전에 빨리 나가' 꽤나 살고 싶긴 했는지 주춤거리다가 뛰어나갔고 그제서야 기둥을 짜증스레 던져버린 후 건물 더미를 빠져나오는 나였다. '..생일날 괜한 일만 벌렸군'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백화점 건물은 이미 초토화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붕괴되어 있었고, 멀찌감치에서 인간들이 뭉쳐 웅성대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로 걸어나오자, 다들 놀라서 내게 말을 건네왔다. [소방대원입니다.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요? 가족이나 친구가 안에 있으십니까?] [세상에, 건물이 저렇게 끔찍하게 무너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온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혹시, 나오면서 야구점퍼 입은 애 못 봤니...? 아들이.. 안에 있는데...] 아, 정신없어. 언제 봤다고 반말들이신지. 그런 모난 생각을 하며 대충 괜찮다 하고 도망친 후 사라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뛰어와 나를 붙잡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저기, 하아...저기!! 괜찮,으세요...? 아까 걔였다. 살았으면 집에나 튀어갈 것이지 날 기다린건가. 귀찮게.

'어. 괜찮으니까 가봐' -?? 잠깐 스탑!!! 아니, 저기요! '왜' -왜? 왜 괜찮아요?! 막아준답시고 그 무거운, 거대한 건물 기둥을 들고. 기둥에 완전히 깔리는 거 내가 분명 봤는데! 생채기 하나 안 났어. 너무 멀쩡해. 도대체 정체가 뭐냐구요 황당하다는 듯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가뜩이나 밖에 나와서 인간과 길게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였는데,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하나씩 물어보던가 하나만 물어봐' -말은 또 왜이렇게 짧으세요 아까부터? '생명의 은인한테 너무하네. 지금 그게 중요한가? 너 나 아니였음 깔려 죽었어, 저기서' -그건...고맙긴 한데.. '귀찮은 꼬맹이. 도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길래' -뭐, 꼬맹? 니 눈엔 스물 여덟이 꼬맹으로 보이냐?? '니?' -지는 나보다 한참 어려보이는구만.. '지..?'

스물 여덟.... 스물 여덟. 28. 내겐 감도 안 올 만큼 적은 나이에 어이가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말이야 '맞아' -말장난 하자는 게, '정체가 뭐냐고 물었잖아. 말하면 믿을래?' -....일단 들어나보죠 '나 뱀파이어야' -뭐? '몰라? 흡혈귀' 인간에게 내 입으로 내 정체를 터놓은 적은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처음인 것 같았다. -그... 아무래도 기둥에 머리를 깔린 것 같은데 괜찮니? '너 영조 알아?' -갑자기 웬.. 왕? 모를리가; '내가 그때부터 살았어. 영조 1년' -뭐요? '오늘은 놀랍게도 내 2.7.0.번째 생.일.이였고, 1년만에 밖에 나왔고. 제대로 망쳤고' -멀쩡하게 생겨먹어선 정상적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네 진짜. 싸가지도 밥 말아 먹고 머리도 다치고•••• 이왕 깐 거 거짓말쟁이 취급은 싫은데. 말해도 끝까지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직접 보여줄 수 밖에.

쨍쨍하고 밝았던 한여름의 낮은 순식간에 깜깜하고도 칠흙같은 밤이 되었고 무너진 건물과 도로,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전부 무덤으로 바뀌었다.

꼭 이렇게 몸소 보여줘야지 믿네. -...이게.. '이게 나야'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자 검었던 눈 색깔이 변했다. 건물이 무너지던 순간보다도 더 공포스러운지 꼬맹이가 숨을 가쁘게 쉬었다. '그러니까 한번에 믿지 그랬어 그냥' -내가 믿게 생겼어요? 냅다 흡혈귀라는데?! 그런가. -빨리 원래대로 되돌려놔요, 빨리! 무섭다고요.. 너무 겁에 질린 꼬맹이를 보고 한숨 쉬며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다시금 들려오는 익숙한 생활소음에 꼬맹이가 꼭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뭐야..? 친히 집으로 모셨다. 이건 뭐, 택시도 아니고. -우리 집? 내 집은 또 어떻ㄱ, '착각하지마. 인간이 아니라고 했잖아. 스토킹 같은 거 안해도 충분히 알 수 있어 이 정도는' -.... '아까 그건 환영이였고' -그럼...아까 거기는 어디였어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이였어요? 꿈처럼? '존댓말 잘하네' -무서우니까요..

이런 걸 물어보는 인간은 없었는데. '나 때문에 죽은 인간들의 묘' -...! 내 대답을 듣자마자 넌 뒷걸음질 쳤다. 꼬맹이답게 겁은 많아가지고.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죄 없는 인간들 죽인 거 아닌데. 내가 죽인 인간들은 전부 연쇄살인범, 상습폭행범, 아동성폭행범 같은 쓰레기들이였어. 지금은 안 죽여' -그땐 왜 죽인건데요 '내가 피 빨아서' -피 빨면 죽어요? '아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흡혈하면 안 죽고 뱀파이어가 돼. 근데 난 나 같은 괴물을 남기기 싫었어 후대에까지. 그래서 배고픈 김에 모조리 빨아먹었지' -...지금은 왜 안 죽여요..? '더러워서. 한 명씩 피가 빨려 죽을 때마다 내가 혐오스러웠어. 그러면서 서서히 허기를 다스릴 수 있게 됐고' -그럼 이젠 피 없이 살 수 있어요?

'아주 배고프면 동물 피나 먹는거지 뭐. 근데 270년 살아봐, 젊었을 땐 늘 배고팠어도 이젠 배가 고프던 안 고프던 어차피 죽지도 않는데 싶다' -270살 먹으면 전 죽어요. 암튼 아저씨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 아니 뱀파이어네요 '수용이 빠르네. 아저씨는 거슬리고' 바뀐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는 반말했다고 싹수가 노랗다는 둥 싸가지를 밥 말아먹냐는 둥 생난리를 치더니. -270살이면 우리 나이 차이가 거의 240인데. 솔직히 조상 뻘이죠 '허..' -근데 뭐, 대충 외관상 젊어보이니까 아저씨 하세요. '필요없어. 어차피 넌 오늘 이후로 날 만날 일 없을테니까. 집이나 가' -어어? 잠깐만요!! '부르지마 갈거니까' -오늘 생일이라면서요! '근데. 생일선물로 니 피 줄거야?' -무슨 그런 섬뜩한 말씀을 그 얼굴로 하세요..

-특별한 하루 만들어줄게요, 내가. 270번째 생일은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기억에 남을만큼. 얘는 진짜 물려봐야 정신 차리나. 아까는 이빨 좀 드러냈다고 바들대더니. 그럼 무서워하면서 꺼지는 게 정상 아닌가? 평소였다면 상대도 안 하고 연기처럼 사라졌겠지만 '그래. 대신, 니 말을 지키지 못하면 니 피를 줘. 한 방울도 남김없이' -네. 네?! '되게 무섭지. 안되겠지? 가' 또 한번 날 붙잡는 너였다. -잠깐만요 나 아직 대답 안했어요..! '해봐' -...나 겁 진짜 많거든요? 근데, 자존심도 완전 세요. 자꾸 이딴 식으로 나오시면.. 저 좀 오기 생겨요 '쓸데없는거야' -해요. '자존심이 니 목숨값과 비례하나보네. 잘 생각해봐. 오늘은 7시간 남았어' -저도 시계 볼 줄 알아요. 그래도 할건데요 '보기보다 멍청하네' -대신. 나도 조건 걸래요. 내가 아저씨를 한 순간이라도 즐겁게 해준다면, 우리 친구 먹어요.

'나이 차이 운운하더니 뭔 친구야' -말이 그렇다는거지, 친해지자고요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구미가 당겼다. 좀 귀찮긴 해도, 이건 누가 봐도 내가 유리한 게임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인간 피 좀 빨겠네' 그래서 너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호언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인간의 하루였다.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저녁을 먹고, 지나다니는 인간이 거의 없던 외진 산책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만 하기 바빴다. 그뿐이였다. -햇빛 쐬면 죽어요? '안 죽는 거 봤잖아. 그냥 밝은 걸 안 좋아하는 것 뿐이야' -아저씨는 몇시를 제일 좋아해요? '오전 12시 30분' -왜요? 밤이라서?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서' -그럼 마늘이나 십자가 무서워해요? '안 무서워. 그런 거 다 인간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라고'

-평소엔 뭐하면서 살아요? '집에서 암막커튼 치고 사는데' -집에서 뭐하는데요? '아무것도 안한다니까' -밤에라도 밖에 나가면 되잖아요 '싫어. 할 것도 없는데 뭣하러' -으휴. 그러니까 사람이 이렇게 우울하고 창백하고 혈색도 없지 '그거 아니여도 인간이 아니라서 원래 없거든' -아저씨도 물려서 뱀파이어 된 거에요? '아니, 아버지가 뱀파이어여서' -엄마는요? '인간' -헐! 뱀파이어랑 인간이 진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거였어요? '안될 건 없지. 서로 힘들 뿐' -아...그럼 아빠는 아직 살아계세요..? '나 아버지랑 사이 별로 안 좋아. 아마 해외에 있으시겠지. 죽진 않으니까 살아계실거고' -...형제자매는 있어요? '누나 있었어. 누나는 인간이였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아저씨 빼라' -이름 뭐냐구요 '이제노' -성씨는 엄마 성씨인거에요? '어. 이름도 어머니가 지어주셨어. 임금 제 힘쓸 노' -임금이요? '웃음 참는 거 다 보여'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인간의 하루였는데. 솔직히 즐거웠다. 대화할수록 나를 신기해하고 더욱 궁금해하는 너를 보면서 단답 뿐이였던 내 대답은 괜히 한마디, 두마디 살을 붙여가며 점점 길어졌고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외로웠구나, 나. 나 대화 좋아했었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웃었다. 비웃음이나 너털웃음이 아닌, 나의 진실된 웃음. 한번이 어렵다는 인간들의 말을 그날 이해했다. 자꾸만 입꼬리를 올리는 내가 낯설기 그지 없었다.

답지 않게 너라는 인간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어졌다. '질문은 이제 그만하고, 니 얘기도 좀 해봐. 입 아파' 질문에 질린 척 하며 슬쩍 물었다. -뭐가요?

'넌 주로 뭐하면서 사냐고'

니가 머뭇거렸다. 그리고 이내 입을 뗐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죠, 뭐. 똑같은데.. 전 유달리 좀 고달팠어요. 아빠는 저 애기 때 돌아가시고 형편이 안 좋아져서 엄마가 일하는 분식집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제 친구들 전부 잘 사는 편도 아닌데 제가 워낙 가난하다 보니까 따도 당하고. 힘들게 사귄 친구들마저도 저랑 안 맞았고... 엄마는 일하느라 늘 바쁘고.. 저한텐 오빠 뿐이였는데 오빠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요. 이미 몇 년 전에 결혼했어요. 오빠가 생활비를 보내주긴 하지만.. 더이상 넙죽 못 받겠더라고요, 이 나이 먹고. 그래서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오늘 직장까지 잃었네요..ㅎ 아저씨 아니였으면 목숨도 잃었겠죠' '....'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꼬맹이 주제에.. 인생이 생각보다 가시밭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와 닮은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를 것 같아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니가 나를 쳐다봤다. 아. 이게 아니였는데..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괜히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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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요? 아까 잘만 웃던데, 얘기하면서. 솔직히 재밌었죠? 기억에 남을 것 같죠? 호감일까, 혹은 동정일까. 하루만에 생긴 감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무언가가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어딜 가도, 뭘 해도 오늘 있었던 일들만 생각날 것 같은 그런 생소한 감정. 너와 내가 만난 건 우연이고 오늘 내가 널 살린 것도, 우연일까? '...어. 그럴 것 같네'

이 아이랑 함께 있을 때, 나는 나를 어디까지 발견할 수 있을까. 너는 나를 얼마만큼 바꿔놓을 수 있는걸까. -내가 이겼네요 결국. 그럼 나 뱀파이어 친구 생기는 거에요? 니가 좀 궁금해졌어. 270년만에 처음 보는 너같은 인간이, 날카로운 유리잔 같던 나에게 하루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준 너라는 인간이. 과연 나의 인연일지 궁금해졌어.

'그래' 친구 하자, 우리. 넌 생각보다 괜찮은 인간일 것 같거든.

총 18개의 댓글

  • 도옹ღ 24.02.25

    선생님 계속 써주세효..!!!!!!!!!!💚💚💚💚💚

  • BZ 24.02.25

    ...?뭐죠 이건..하루종일 이것만 생각날 것 같은데. 진짜 쌤 뭐죠.정체가 혹시 뱀파이어인가요. 아니면 저 여주가 혹시 쌤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하기엔 이럴 수 없을 것 같은데요.진짜 전생에 써둔 거 기억해서 쓴거죠?아니 진짜 사람이세요? 이건 그냥 개씹존나열라쌈@뽕하잖아요 머리에 공장있는 거 맞죠.아니면 이럴 수 없다고요 이게 사람이 쓴 거 맞냐고요.로봇도 이렇게는 못써요.선생님,아니아니 언니라고 부를게요. 시1발 언니 존@나 사랑해요 진짜.혹시 시간 좀 있으세요?있으시면 저랑 혼인신고서 쓰실래요? 예식장은 바로 내일로 하죠.

  • 잼즈 24.02.25

    앋따 이거 나만 과몰입 하면서 봣어요?! 호호

  • 모찌붕어빵 24.03.03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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