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기왕자이한
조회수 42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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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우리만의 시간 “토요일, 나랑 같이 갈래?” 이한은 복도 창가에서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은 곧, 둘 사이에 생긴 새로운 단어— ‘데이트’를 의미했다. 하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디 가?” “비밀. 넌 그냥 나 믿고 따라와.” ⸻ 그리고 토요일. 하나는 거울 앞에서 여러 번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며 고민 중이었다. 단정한 셔츠 원피스를 입었지만, 뭔가 허전했다. 작은 귀걸이를 귀에 걸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않겠지…? 너무 꾸민 건가?” 심장이 자꾸 두근거렸다. 그냥 걷기만 해도 설레는 요즘, 함께하는 첫 외출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떨리게 했다.
이한은 동네 역 앞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하나를 본 순간, 그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와… 진짜…” “왜?” “아니. 그냥… 너무 예뻐서.”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하면 반칙이야.” 하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이한은 웃으면서 그녀의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 “오늘, 재밌는 데 갈 거야.” ⸻ 이한이 데려간 곳은 한강 공원 근처의 작은 수공예 마켓. 알록달록한 텐트 아래, 수제로 만든 반지, 목걸이, 그림, 엽서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하나는 작은 도자기 목걸이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이한에게 보여줬다. “이거 예쁘다. 보라색. 좋아하거든.” “그래? 그럼 내가 사줄게.” “아냐, 괜찮아. 그냥 예쁘다고 한 거야.” “내가 네 첫 남자친구잖아.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냐?” “…말 되게 잘한다, 너.” 하나는 작게 웃었고, 이한은 자랑스럽게 목걸이를 계산했다. “그럼 나도 너한테 뭐 하나 사줄래.”
하나는 이한에게 은색 실팔찌를 골라주었다. “이거. 네 손목이 깔끔해서 잘 어울릴 것 같아.” 그 말에 이한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실팔찌를 손목에 걸며, 그는 작게 말했다. “…이거 평생 안 풀게.” ⸻ 공원 끝에 있는 분수대 앞,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벤치에 앉았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서로가 곁에 있어 그 모든 게 좋았다. “하나야.” “응?” “지금 이 순간, 되게… 진짜인 것 같아.” “무슨 뜻이야?” “그냥… 누가 내 눈을 가리고 꾸며낸 거 아니고, 꿈도 아니고. 이게 진짜 우리가 함께 있는 거란 거. 그런 기분.” 하나는 이한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그래. 네 옆에 있으면 내가 진짜 ‘나’로 있는 느낌이야.”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이내 아주 천천히— 이한이 하나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작고 따뜻한 손. 처음 잡은 그 손은 너무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나야.” “응?” “앞으로 싸우게 되더라도, 난 항상 말해줄게.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그러니까 넌… 혼자 속으로 삼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은 마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싸움까지도 다 안아주겠다는 약속 같았다. 하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한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 그날 밤, 하나는 핸드폰 앨범을 넘기다가, 그날 이한이 찍어준 사진을 발견했다. 햇빛 아래, 분수대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 표정은 그녀가 몰랐던 웃음이었다. 진짜로, 완전히 행복한 얼굴. 그 순간, 하나는 스스로에게도 고백했다. ‘나, 이한이 좋아.’ 그리고, 마음속에 아주 작게 덧붙였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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