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연
7월 8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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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이 형이 가사를 쓰기 전에 “이번에 MAMA에서 특별 공연을 하는데 너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널 위해서 너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라고 먼저 물어봐줬는데 너무 고마웠어요. 그때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아기 때부터 절 키워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어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처음이었는데 제가 해외에 있어서 장례식장을 못갔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무대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야 하고 제가 웃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약간 힘든 거예요. 그리고 무대 끝나고 와서 장례식장에 있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그때 재현이 형이 “안 웃어도 돼. 울어도 돼. 왜 그렇게 어른인 척하려고 해. 어른처럼 안 굴어도 돼. 너 막내야. 무대에 못 나가도 돼. 그러니까 여기 있어.”라고 해주는데 그 말에 엄청 울음이 나면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할아버지가 위에서도 응원해주고 계실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제가 힘들어 하고 우울했던 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도 재현이 형이나 다른 형들한테 많은 위로를 받아서 이겨낼 수 있었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귀국하자마자 형들이 납골당에도 같이 가줬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였는데 그때를 이겨낼 수 있게 옆에 형들이 있었어요. 제가 돌파구를 찾을 때나 도전의 시작점에 있을 때 항상 형들이 옆에 있었어요. 노래 만드는 걸 시작할 때도 태산이 형이 있었고, 보컬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할 때는 성호 형이, 춤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할 땐 리우 형이 있었고요.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따뜻함을 주는건 이한이 형이, 랩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건 재현이 형이었어요. 재현이 형이 항상 “너가 만든 음악 너무 좋은데 왜 자꾸 안 들려주려고 해? 나 진짜 좋아해.”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서 그걸로 인해 제 자작곡을 들려주게 됐던 기억도 있어요. 그런데 형들이 저한테 일부러 자신감을 주려고 한 건 아니지만 형들이랑 같이 살고 연습하면서 ‘이렇게 하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나도 진짜 잘할 수 있겠구나.’라는 거에서 얻는 자신감이었어요. 지금은 같은 팀의 멤버고, 같이 무대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연습생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형들은 제가 보고 배우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정말 처음이었고, 잘 못하다 보니 ‘형들한테 피해가 안 가게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아니면 ‘형들보다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형들이 귀찮아할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봤었어요. 저는 욕심이 정말 많은 아이거든요. 계속해서 저를 발전시키고 싶고 뭐든 다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부딪히고 보고 생각한 대로 해봐요. 별로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경험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실패를 겪더라도 그걸 다시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는데 이것마저 두려워하면 다른 건 어떻게 해내겠어요? 저는 5만 명 원도어 앞에서, 그래미나 빌보드 같은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게 꿈인데 연습실 안에서 어떤 곡 하나, 어떤 춤 하나를 도전하는 걸, 새로운 곡을 써서 남한테 들려주는 걸 무서워할 거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도전해요. 노래 부를 때도, 라이브를 연습할 때도 ‘지금 원도어 앞에서 못 부르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원도어 기 살려줘야 할 때는 어떻게 불러주려고 이러냐?’라는 생각으로 항상 일단 도전해봐요. 포기는 애초에 없었어요. 그냥 배제 대상. ‘이미 시작했는데 왜 포기를 하지?’, ‘이미 나는 강을 건넜는데.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포기를 하면 도대체 어떤 걸 해야 하지? 다시 돌아가도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질 텐데 어떤 걸 할 거라고 포기를 하지?’라는 마인드여서 중간에 진짜 힘들었던 적은 있어도 회사를 나가고 싶다거나 포기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절대 한 번도 든 적 없어요. 시작했을 때부터 오직 데뷔의 꿈 하나였어요. 춤도 진짜 추기 싫었는데 이겨낼 수 이유는 그냥 포기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형들이랑 한 팀이 되기 위해 계속 뭔가를 하려는 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잡아줬던 형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저 그런데 요즘은 고민을 진짜 많이해요. 사실 데뷔하고 난 이후로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사를 더 잘 쓰고 무대를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걸까?’ 같은 질문을 하루도 안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매일 밤 결론을 내려도 내일이 되면 또 바뀌어요. 하루하루도 다 다른 것처럼 고민에 대한 답도 매일매일 바뀌는 것 같아요. 많이 웃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굳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이 반복됐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일상생활에서 하는 고민만으로도 충분한데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하는 생각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잠 잘자고, 밥 잘 먹고, 주변 사람이랑 재밌게 지내고 원도어 보면서 행복하게 무대하고, 멤버들끼리 재밌게 행복하게 지내고, 웃으면서 파이팅하는 삶이 저한테는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계속 같이 살다 보니까 형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고 형들이 슬프면 저도 슬프고 형들이 힘들면 저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형들한테 고마워할 건 정말 고마워하되 나중에는 그걸 넘어 항상 도움이 돼주고 싶고 형들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동생이 되고 싶어요.
《 어른과 미성년의 경계에 머무르고 싶어도, 어른이라는 단어가 부담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와도,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운학의 이야기 》
𝑤𝑒𝑣𝑒𝑟𝑠𝑒 𝑚𝑎𝑔𝑎𝑧𝑖𝑛𝑒
- 𝐵𝑂𝑌𝑁𝐸𝑋𝑇𝐷𝑂𝑂𝑅 𝑤𝑜𝑜𝑛ℎ𝑎𝑘
우연히 HOW 컴백 때 운학이가 했던 인터뷰를 보고 너무 감동 받아서 조금 가져와봤어요 - 🥺